채널: 휴먼스토리 | 길이: 43:46 | 날짜: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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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반지하 환경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고 표현된다. 그는 물이 차는 반지하를 보며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집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가난 때문에 자존감이 생기기 어려웠고, 부모에게 더 좋은 집에서 살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마음이 훗날 “대기업에 들어가 부모에게 새로운 기쁨을 드리겠다”는 목표로 이어졌다.
도입부는 강남구 논현동의 오전 6시라는 시간으로 시작한다. 제작진은 채윤석 대표가 막 일어난 것인지 묻고, 이어 그 공간이 술집인지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술이 많다는 반응을 보인다. 채 대표는 술집이 아니라 회사라고 웃으며 설명하고, 원래는 한쪽에 침대처럼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었지만 실제로는 잘 올라가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핵심은 이 공간이 사무실이면서 숙소이고, 동시에 씻고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는 샤워 시설을 마련해두었고, 회사에서 잠도 자고 씻고 생활을 모두 한다. 제작진이 소파에서 자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침대에서 자면 잠을 잘 자게 되지만 오히려 몸이 너무 편안해지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고 답한다. 그래서 침대에서 안 잔 지 오래됐다고 한다.
이 장면은 제목의 “노숙자”라는 단어가 단순 과거의 극한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현재도 그는 대표라는 위치와 큰 투자 유치 이력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중심을 집이 아니라 회사에 두고 있다. 다만 과거의 노숙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태였고, 현재의 회사 생활은 일에 몰입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
도입 이후 채 대표는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한다. 그는 유튜브를 베이스로 한 뷰티 전문 토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메인 MC로 소녀시대 티파니를 내세운다고 말한다. 이나연, 에이미 등과 함께 게스트 근황 토크와 뷰티 토크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부글부글’이라는 플랫폼 회사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그는 화장품 회사 ‘코페르’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제작진은 그를 “화장품 회사 대표이자 유튜브 플랫폼 활동을 하는 대표”로 정리한다. 이 정리는 영상의 첫 번째 축을 만든다. 채 대표의 현재는 제조·브랜드·콘텐츠·플랫폼이 한데 섞여 있는 뷰티 사업가의 모습이다.
이 부분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뒤에서 등장할 투자 유치와 제품 테스트의 전제다. 그는 화장품을 팔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고, 콘텐츠로 설명하고,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사람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영상 후반의 스프레이·필링 테스트 장면도 대표 개인의 취미가 아니라 브랜드 운영 방식의 일부로 이해된다.

제작진은 사전 정보로 “원래 노숙 생활을 하다가 지금 통장에 270억이 현금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다고 말한다. 채 대표는 그 정보가 잘못됐다고 정정한다. 실제 금액은 230억이고, 7개월 전 통장에 일시금처럼 찍혔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30억이 개인이 번 돈이나 개인 통장에 들어온 단순 재산처럼 다뤄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후반부 설명과 연결하면 이 돈은 코페르가 투자회사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이다. 영상 초반에는 “꿈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돈”이 통장에 찍혔다는 충격을 먼저 보여주고, 후반부에서는 왜 그 돈을 받았는지,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채 대표는 큰돈이 들어온 경험을 과장된 성공담으로만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나중에 230억이 들어온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즉 이 금액은 개인의 소비 여력을 과시하는 숫자가 아니라, 회사 성장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받은 외부 자본으로 해석된다.
채 대표는 원래 축구선수였고, 울산의 현대미포조선 축구팀에 있었다. 그가 축구를 그만둔 지는 약 22~23년 정도 된 것으로 언급된다. 현대미포조선은 지금 시청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2002년과 2004년 무렵에는 전국 최강팀 중 하나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십수 년 동안 축구선수로만 살아왔다. 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자신이 더 높은 수준까지는 갈 수 없다는 한계를 확실하게 느꼈고, 그것이 그만두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2002년 월드컵 세대와 연결해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홍명보 같은 이름도 언급된다.
홍명보 감독 같은 유명 선수와 같은 필드에서 뛰어봤느냐는 질문에는, 잠깐 같은 팀으로 뛴 선수도 있었고 대부분은 다른 팀 선수들이었다고 답한다. 이 대목은 그의 축구 이력이 허황된 자기 포장이 아니라 실제 축구계 안에 있었던 경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월드컵 영웅급의 선수로 올라가지는 못했다는 판단을 비교적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축구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신발과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간다. 제작진이 신발이 많다고 하자, 채 대표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남자 패션 쪽에서 오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6년 전, 2019년쯤 ‘난닝구닷컴’이라는 유명 여성 패션 회사 쪽에서 계열사 대표이사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작년 12월 31일까지 병행으로 대표이사 생활을 해본 기회가 있었고, 약 6년 정도 했던 것으로 정리된다. 이 경험은 그가 화장품뿐 아니라 패션·뷰티·커머스의 감각을 폭넓게 익혔다는 사실을 보강한다.
현재 사무실 생활과도 연결된다. 회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옷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직원들도 대표가 회사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런 생활을 오래 해서 특별히 불편한지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대표라는 직함과 달리 일상은 상당히 비정형적이고, 사무실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채 대표는 운동만 하다가 그만뒀을 때 막막했다고 한다. 2004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하며, 운동 쪽으로 다시 생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한다. 주변의 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지도자나 관련 일로 가는 것을 봤지만, 그는 그 길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축구에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미 다 쏟았다고 느꼈다. 둘째, 성공하지 못한 축구선수가 후진을 양성할 때 자기보다 더 잘할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다.
그래서 화장품 회사로 바로 간 것도 아니고, 우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방향으로 사고가 바뀐다. 당시 어릴 때 TV 드라마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 같은 고급 주거지가 등장했고, 대기업 과장 같은 사람들이 그런 곳에 사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저런 데서 살 수 있구나”, “돈을 많이 버는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채 대표는 축구를 그만두던 때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환경을 예로 들며, 그런 집이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집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물이 차는 반지하를 떠올리며, 자신도 돈을 많이 벌어 부모가 그런 집이 아니라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가난 때문에 어릴 때 자존감이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못 사는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자존감 자체가 생기기 어렵다고 느꼈다. 부모가 밖에서 자부심을 갖고 자랑할 만한 일이 많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부모가 대접받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들이 축구선수라는 사실이었다.
축구선수 부모들끼리 만나고, 학부모들끼리 교류하는 자리에서 그의 부모는 “우리 아들 선수다”, “우리 아들 어느 팀 누구다”, “학교 주장이다”라는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때만큼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강해 보였고 대접받았다. 그래서 그는 축구를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진로를 바꾸겠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의 유일한 자랑거리를 없애는 일처럼 느껴져 죄송했다고 한다.

운동을 그만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집에도 갈 수 없었다. 울산에서 운동선수들은 합숙 훈련을 하면 큰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그 가방 안에 자신의 짐이 모두 들어 있었다고 한다. 배운 것이 운동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그가 떠올린 막연한 해법은 “대기업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지”였다. 축구를 그만두는 슬픔이나 죄송함을 대기업 입사라는 기쁨으로 맞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 대기업은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부모에게 다시 자랑거리를 만들어주는 상징으로 작동한다.
울산이라는 지역 환경도 목표를 구체화했다. 동네 전체가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고, 주말 조기축구장에서도 현대중공업 직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반 공인처럼 알려진 축구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용접을 배우라거나, 누구를 알아야 한다는 등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용접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국가 또는 현대중공업 관련 용접기술 학원에 1년 동안 다녔다. 부모에게는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운동을 그만뒀다는 사실 자체를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용접 학원에 다닌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용접 학원은 현대중공업 쪽에서 운영하는 기술 학원으로 설명된다. 그는 거기서 1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교육 기간에는 월급을 받는 환경이 아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나 6시까지 매일같이 용접 교육을 받아야 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아야 했다.
이 시기는 그의 노숙 경험과 직접 연결된다. 축구선수 시절에 벌어둔 돈도 많지 않았고, 한 달 10만 원짜리 방조차 부담하기 어려웠다. 생존을 위해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건설 현장에 가서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해야 했다. 생활비가 없으니 초반에는 남의 건물 안, 여름에는 조금 시원한 건물 지하 같은 곳에서 잠을 잤다.
그는 “건물 안에서 잤다”는 말의 의미를 묻자 그것이 곧 노숙자 생활이었다고 설명한다. 남의 건물에서 잠을 자고, 여름에는 더우니 지하 공간에서 자면 그나마 시원했다고 한다. 제작진이 남의 건물에서 그냥 잔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자신이 도둑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몇 달 그렇게 지내다 보니 울산 안에서도 인맥이 생겼다. 형들이 2~3일씩 재워주기도 했지만, 그에게도 염치가 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하루 이틀 재워주면 다시 밖으로 나가 자는 식이었다. 한여름에는 사람들이 많은 바깥 공간에서 일행처럼 어울려 보일 수 있었고, 구경도 할 겸 해수욕장에서 잠든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 생활은 약 1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건설 현장에서 번 돈을 생활비로 쓰기보다 부모에게 보내기도 했다. 운동을 그만뒀다는 말을 못 했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작은 금액이라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생활비는 더 부족했고, 노숙 상태에서 버텨야 했다.

그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단순히 지원서를 넣은 것이 아니라, 매우 집요한 행동을 했다. 인사총무팀에 어떤 전무가 있고, 그 사람이 인사 관련 총책임자라는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그 임원은 직원 3만 명 규모의 회사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었고, 평직원들이 쉽게 알거나 연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물어물어 임원에게 사택이 제공된다는 사실과 그 사택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 임원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를 한 달 정도 집 앞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패턴은 일정했다. 오전 5시 30분쯤 사옥 문이 열리고,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근했다.
채 대표는 자신이 용접을 배우러 가는 시간이 오전 8시였기 때문에, 그 전 새벽 시간에 임원 사택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는 피켓을 만들고 그 위에 이력서 내용을 적었다. 맨 위에는 “동일한 조건으로 면접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만 주신다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라는 취지의 문구를 크게 써두었다. 4월 첫째 날 정도부터 시작했고,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매일 갔다고 한다.

거의 1년이 지났을 때, 그 임원이 처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임원은 “이력서 있어?”라고 물었고, 채 대표는 항상 손으로 쓴 이력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건넸다. 그날 특별한 대화는 길게 없었고, 임원은 이력서만 가지고 갔다.
하지만 바로 그날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 날짜가 잡혔고, 하루 이틀 뒤쯤 면접을 봤으며, 그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시 이틀 뒤쯤부터 출근한 것으로 기억하고, 그 날짜가 4월 13일쯤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용접사로 입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대중공업 인사총무팀에 정식사원으로 들어갔다. 계약직이 아니라 정식사원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임원이 인사팀장에게 “죽을 때까지 고생시키라”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 집 앞에 찾아올 정도로 끈질긴 사람이니, 무슨 일이든 시켜도 할 사람이라고 본 것이다.
입사 후 맡은 업무는 행사 지원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워낙 큰 회사라 행사가 많았고, 직원들과 임원들을 챙기는 업무가 계속됐다. 채 대표는 1년 내내 행사 지원을 했다고 설명한다. 365일 중 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노숙자 생활보다는 그 일이 낫다고 느꼈지만, 강도는 매우 높았다. 자신이 너무 강해 보였는지, 혹은 임원이 했던 말 때문인지, 힘든 일이 계속 맡겨졌다. 현대중공업에서 그렇게 약 24개월 동안 일했다. 이 시기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강한 노동과 조직생활을 감당해야 했던 구간이다.
그는 이후 서울과 가까운 대기업으로 갈 기회를 생각한다. 충남 아산의 현대자동차가 당시 연봉이 가장 세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대자동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년 정도 알아봤다. 주말마다 아산을 오가며 준비했고, 로봇 오퍼레이터 공채 모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대자동차 입사는 현대중공업과 달랐다. 지인을 통해 데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공채 사원으로 시험을 봤고, 한 번에 합격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딱 만 2년을 다닌 뒤 현대자동차로 이직했다. 이후 2017년까지 현대자동차에 다녔다.
제작진이 약 10년 정도 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10년 조금 넘었다고 답한다. 그는 대기업 직장 생활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규칙적인 조직, 큰 회사의 시스템, 안정된 수입 등이 그에게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때 이미 다음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2017년에 사직서를 냈지만, 화장품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6년이라고 말한다. 회사에서는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현대자동차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이 말은 이전 직장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의 출발점을 설명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맥락이다.

2016년 당시 그는 화장품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것을 좋아했고, 그 과정에서 IBK 기업은행과 연금보험 대표이사를 지낸 인물과 인연이 생겼다. 그 인물은 채 대표를 양아들처럼 생각해주었고, 자주 불러 사업에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 조언은 단순한 격려에 그치지 않았다. 그 부행장 출신 인물은 중견기업, 중소기업 오너들을 만나는 자리에 채 대표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함께 식사하게 하고, 기업 오너들과 자리를 갖게 하며, 약 1년 가까이 사업가들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채 대표의 생각이 달라지고 깊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기업이 화장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기업은 채 대표에게 온라인 총판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채 대표는 그 제안이 오로지 자신을 믿어준 부행장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알겠다고 했고, 이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처음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하루에 10만 원씩만 더 벌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사업은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매출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매달 그렇게 벌지는 못했고, 못 벌 때는 아예 못 벌 때도 있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러나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2,000만 원, 3,000만 원도 벌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업처럼 시작한 일이었지만, 수익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 경험은 그가 더 열심히 하게 된 계기였다. 하루 10만 원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실제로 월 수천만 원 매출을 경험하자 사업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제작진은 “좋은 기회로 대기업 다니다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이라고 정리하고, 채 대표도 맞다고 답한다.
현재의 코페르는 그때 만든 브랜드와 같은 브랜드다. 즉 초기에 온라인 총판처럼 시작한 흐름이 이후 독자적인 화장품 브랜드 운영으로 이어졌다. 9년, 1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그는 이제 화장품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제품을 직접 만들고 팔고 테스트하면서 사업가이자 개발 감각을 가진 대표가 된 것이다.

현재 충남 아산의 사무실은 R&D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공사 중이던 공간은 이제 연구원들이 다니는 연구개발 공간이 됐다. 개발진이 각자 맡은 영역에서 잘하고 있지만, 채 대표는 아직도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만들어온 모든 제품이 자신이 만든 제품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잘 알든 모르든 초기에 출시했던 제품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래서 대표가 되었고 회사가 커졌다고 해서 제품 감각을 놓으면 안 된다고 본다. 이 태도는 이후 손등과 얼굴에 직접 제품을 바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대목은 채 대표의 사업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투자금을 유치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가 아니라, 제품의 사용감과 효과를 직접 확인하는 현장형 대표로 자신을 설명한다.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방식도, 제품 테스트를 반복하는 방식도 모두 회사와 자신을 거의 분리하지 않는 생활 방식에서 나온다.
제작진은 230억이 어떤 돈인지 묻는다. 벌어들인 돈인지, 투자금인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채 대표는 2023년까지 계속해서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금융권에 소문이 나면서 투자회사들의 연락이 많이 왔다고 설명한다. 2023년 연말까지 지내고 2024년에 투자라는 것을 자신도 받아보자고 결정했다.
그는 남이 돈을 준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투자를 받는 것은 책임이 따르고, 회사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가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시간을 당기기 위해서였다. 혼자 힘으로 매출 1,000억, 2,000억까지 가려면 5년 정도 걸릴 일을, 자본의 힘을 빌려 1년이나 2년으로 단축해보자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230억 투자를 확정했다. 첫 번째로 투자 결정을 해준 곳으로 미래에셋, 코오롱, 한국투자증권 쪽이 언급되고, 외국계 회사까지 총 7곳이 참여했다고 한다. 어떤 곳은 40억, 어떤 곳은 60억, 어떤 곳은 30억 등으로 나눠 투자했고, 이를 합친 금액이 230억이었다. 첫날 투자비가 찍혔을 때는 정말 신기했다고 한다.

채 대표는 2024년 기준으로 첫 번째 투자에서 200억을 넘긴 유일한 회사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투자 단계는 시드, 시리즈 A, B, C처럼 나뉘는데, 코페르는 난생처음 받은 투자가 시드 투자였다. 보통 첫 투자에서 230억을 받는 것은 공식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언론과 매체에서 이 사실이 다뤄지면서 주변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좋아졌다. 투자금 자체보다, 시장이 “이 회사는 검증을 받은 회사”로 보기 시작한 효과가 컸다. 그는 이것을 인생에서 크게 바뀐 것 중 하나로 꼽는다. 돈이 들어온 것보다 외부 신뢰가 생긴 것이 더 실질적인 변화였다는 의미다.
다만 그는 230억이 개인 삶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거듭 말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벌어들인 돈을 회사에 100%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월급을 받아가야 한다는 인식조차 못 하고 살았고, 월급을 받기 시작한 것도 사업 10년 중 최근 3~4년 정도라고 한다. 개인 자산 축적보다 회사 성장이 우선이었다는 고백이다.

채 대표는 230억이 들어온다고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230억은 물론 23억, 2억 3천만 원만 들어와도 인생이 바뀌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자신은 이미 회사에 모든 것을 재투자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돈 자체가 생활 방식을 바꾸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인생에서 바뀐 것으로 꼽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2024년 기준 첫 투자에서 200억을 넘긴 회사라는 외부 평가가 생기면서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졌다. 둘째, 원래 위스키를 좋아했는데 기존에 먹던 것보다 조금 더 비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일 외의 취미생활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정도가 개인적 변화였다고 한다.
이 말은 영상 초반 사무실에 술이 많다는 장면과 연결된다. 술은 단순한 과시용 소품이 아니라, 일 중심의 생활 속에서 남은 작은 취미로 제시된다. 230억이라는 큰 숫자와 “더 비싼 술을 마시게 된 것 정도”라는 사소한 변화의 대비가 채 대표의 태도를 드러낸다.
마지막 세그먼트에서는 제작진이 아까 테스트하던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채 대표는 대단한 것은 아니고, 리뉴얼이나 제품 진행을 위해 스프레이 형태로 뿌리는 제품 등을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손등에 제품을 바르고 차이를 확인한다.
그는 고마드 타입의 필링 제품도 설명한다. 필링, 즉 각질 제거를 위한 제품이며, 손등에 바르고 얼굴에도 테스트한다고 한다. 제작진이 바르면 차이가 느껴지는지 묻자, 채 대표는 화장품이 비슷하다고도 말할 수 있고 특별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답한다. 제품의 차이는 실제 테스트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태도다.
손등 테스트에서는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를 보여주며, 왼쪽은 모공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제작진도 털도 없고 다르다고 반응한다. 채 대표는 대표라고 해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테스트판처럼 써왔다고 말한다. 약 10년 가까이 매일같이 많은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왔다고 한다.

채 대표는 보통 남자들이 화장품을 얼굴에 잘 바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냥 발라도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남자들도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졌고, 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그는 뷰티를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에게는 얼굴로 테스트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손등 같은 부위에 특화된 테스트를 많이 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남성 소비자 시장의 변화와 동시에, 남성 대표로서 제품을 몸으로 이해해온 경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1편은 사업가 채윤석의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묶인다. 노숙과 용접 학원, 대기업 입사, 현대자동차 직장 생활, 온라인 총판, 코페르, 230억 투자, 제품 테스트까지 모두 “기회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한 줄로 수렴한다. 후속 2편에서는 이 이후의 현재 생활, 회사 운영, 개인 철학이 더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제공된 22분 6초까지의 내용만 기준으로 정리했다.
“여기서 잠도 자고 씻고 생활 다 하고 있어요.”
“침대에서 안 잔 지가 좀 오래됐어요.”
“정보가 잘못됐습니다. 230억입니다.”
“7개월 전 230억이 통장에 일시금으로 모두 찍히더라고요.”
“성인 될 때까지 십수 년 동안 축구선수로만 살아왔었는데…”
“내가 여기까지는 안 되는구나를 월드컵을 계기로 확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성공하지 못한 축구선수가 지도자를 했을 때,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가 진짜 저희 집인 줄 알았어요.”
“부모님한테 운동을 그만두는 상황과 맞바꿀 수 있는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동일한 조건으로 면접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만 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력서 있어?”
“그날 연락이 왔어요. 회사에서 면접 들어오라고.”
“용접사로 입사할 줄 알았어요.”
“정식사원으로 인사총무팀에 입사가 됐어요.”
“죽을 때까지 고생시키라고 하셨다더라고요.”
“현대중공업에서 딱 만 2년을 다니고 현대자동차로 이직을 했죠.”
“실패하면 사기고 성공하면 기업가다.”
“하루에 내가 10만 원씩만 더 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한 달에 3,000만 원도 벌고 그러더라고요.”
“투자를 결정하고 시간을 당기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죠.”
“혼자 힘으로 5년 걸릴 걸 자본의 힘으로 1년이나 2년으로 당겨보자.”
“첫 번째 투자를 시드 투자로 230억을 받은 거죠.”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내 인생과 삶이 바뀌진 않을 거라는 건 확고했어요.”
“생기는 모든 돈을 100% 회사에 재투자해왔어요.”
“그냥 돈 10만 원 더 벌어보겠다고 시작한 게 이거였으니까요.”
“대표라고 해서 그냥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남자들도 요새 미에 대한 관심도가 되게 높아요.”
이 1편의 핵심은 “노숙자에서 230억 투자 유치 대표가 됐다”는 자극적인 제목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채윤석 대표의 이야기는 가난, 부모에 대한 책임감, 축구선수로서의 한계 인정, 대기업 입사를 위한 집요한 실행, 생계 공백기의 노숙, 대기업 조직 경험, 인연을 통한 사업 기회, 그리고 제품을 직접 테스트하는 창업가의 태도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세 번이다. 첫째, 축구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운동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순간이다. 둘째, 현대중공업 임원의 사택 앞에서 1년 동안 피켓을 들며 면접 기회를 만들어낸 순간이다. 셋째, 하루 10만 원을 더 벌고 싶다는 작은 목표로 시작한 화장품 온라인 총판이 코페르라는 브랜드와 230억 투자 유치로 이어진 순간이다.
230억 투자는 개인의 벼락부자 서사가 아니라, 2023년까지의 연속 흑자와 회사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받은 외부 자본이다. 채 대표는 이 돈을 인생을 바꾸는 소비 자금이 아니라, 5년 걸릴 성장을 1~2년으로 당기기 위한 시간 단축 장치로 본다. 그래서 투자 이후의 변화도 사치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 변화, 그리고 조금 더 비싼 위스키 정도로 정리된다.
실용적 시사점은 명확하다. 첫째, 기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찰과 반복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둘째, 가난과 실패 경험은 그 자체로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목표와 결합할 때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 셋째, 사업은 지식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신뢰, 실행, 판매 경험에서 시작될 수 있다. 넷째, 큰 투자를 받는 순간에도 대표가 제품과 고객 감각을 놓지 않는 것이 브랜드의 지속성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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